성경의 충분성
당신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에 성경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의심한 적이 있는가? 성경이 당신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민한 적이 있는가? 성경을 천천히 읽으면서 얻는 깨달음보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계시를 바랐던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무언가를 첨가하여 안전함을 추구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당신 마음에 들도록 성경에서 무언가를 빼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신실한 삶을 사는 데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만 당신은 성경의 충분성 문제로 씨름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신학자들은 성경의 속성으로 네 가지를 든다. 충분성(Sufficiency), 명료성(Clarity), 권위성(Authority), 필요성(Necessity)이다. SCAN(스캔)으로 기억하면 쉽다. 각 속성은 성경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내포한다.
충분성 - 성경은 구원과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늘로부터 또 다른 계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명료성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으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줄 공식적인 교도권(magisterium)은 필요하지 않다.
권위성 - 최종 발언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과학이나 인간의 경험, 교회협의회의 가르침을 성경말씀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필요성 - 일반 계시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개인적 경험이나 인간의 추론으로는 구원의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지,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알려주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경의 속성을 재배열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종적이다. 하나님 말씀은 명료하다. 하나님 말씀은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은 충분하다. 이 중에서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 살펴보자.
종종 성경의 완벽함이라 불리는 성경의 충분성 교리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완수하기에 충분히 명료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도덕적 교리다. 불순종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충분히 계시하시지 않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과 준비를 갖추게 한다(참고. 딤후 3:16~17).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현재의 이상에 맞추기 위해 무언가를 뺄 필요는 없다. 하나님 말씀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온전하며 그리스도, 구원, 경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제시한다.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신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성경의 네 속성 중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제일 먼저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충분성이다. 권위성이 자유주의적 문제고, 명료성은 포스트모던의 문제며, 필요성이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의 문제라고 한다면 충분성은 교회에 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의심하는 속성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 바른 것을 말하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다가도 삶이 힘들어지거나 지루하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할 새로운 말이나 계시, 경험을 찾는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천국의 묘사에 대해서는 시큰둥해하면서도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어린아이의 말에는 크게 감탄한다. 하나님과 나눈 특별하고 사적인 대화를 기록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보면서 우리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성경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면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더 많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최종성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최종성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 아들은 모든 사람, 천사들, 제도, 의식, 이전의 계시와 속죄 수단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분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과 계시의 완전함과 최종성을 누린다.
성경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성경의 충분성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성경의 충분성으로 우리는 전통을 본래 자리에 유지한다. 전통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교회의 교리적 신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다. 둘째,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우리의 경험이나 학술적 견해, 문화의 유혹 때문에 성경에서 무언가를 빼려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삶의 모든 면에서 적절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벧후 1:3). 넷째, 성경의 충분성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초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데 충분한 것 그 이상이다. 다만 우리가 성경을 펼쳐 귀를 기울이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위의 글은 케빈 드영, 『성경, 왜 믿어야 하는가?』(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성경의 충분성
당신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에 성경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의심한 적이 있는가? 성경이 당신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민한 적이 있는가? 성경을 천천히 읽으면서 얻는 깨달음보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계시를 바랐던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무언가를 첨가하여 안전함을 추구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당신 마음에 들도록 성경에서 무언가를 빼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신실한 삶을 사는 데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만 당신은 성경의 충분성 문제로 씨름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신학자들은 성경의 속성으로 네 가지를 든다. 충분성(Sufficiency), 명료성(Clarity), 권위성(Authority), 필요성(Necessity)이다. SCAN(스캔)으로 기억하면 쉽다. 각 속성은 성경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내포한다.
충분성 - 성경은 구원과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늘로부터 또 다른 계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명료성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으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줄 공식적인 교도권(magisterium)은 필요하지 않다.
권위성 - 최종 발언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과학이나 인간의 경험, 교회협의회의 가르침을 성경말씀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필요성 - 일반 계시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개인적 경험이나 인간의 추론으로는 구원의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지,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알려주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경의 속성을 재배열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종적이다. 하나님 말씀은 명료하다. 하나님 말씀은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은 충분하다. 이 중에서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 살펴보자.
종종 성경의 완벽함이라 불리는 성경의 충분성 교리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완수하기에 충분히 명료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도덕적 교리다. 불순종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충분히 계시하시지 않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과 준비를 갖추게 한다(참고. 딤후 3:16~17).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현재의 이상에 맞추기 위해 무언가를 뺄 필요는 없다. 하나님 말씀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온전하며 그리스도, 구원, 경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제시한다.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신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성경의 네 속성 중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제일 먼저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충분성이다. 권위성이 자유주의적 문제고, 명료성은 포스트모던의 문제며, 필요성이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의 문제라고 한다면 충분성은 교회에 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의심하는 속성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 바른 것을 말하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다가도 삶이 힘들어지거나 지루하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할 새로운 말이나 계시, 경험을 찾는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천국의 묘사에 대해서는 시큰둥해하면서도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어린아이의 말에는 크게 감탄한다. 하나님과 나눈 특별하고 사적인 대화를 기록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보면서 우리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성경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면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더 많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최종성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최종성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 아들은 모든 사람, 천사들, 제도, 의식, 이전의 계시와 속죄 수단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분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과 계시의 완전함과 최종성을 누린다.
성경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성경의 충분성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성경의 충분성으로 우리는 전통을 본래 자리에 유지한다. 전통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교회의 교리적 신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다. 둘째,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우리의 경험이나 학술적 견해, 문화의 유혹 때문에 성경에서 무언가를 빼려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삶의 모든 면에서 적절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벧후 1:3). 넷째, 성경의 충분성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초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데 충분한 것 그 이상이다. 다만 우리가 성경을 펼쳐 귀를 기울이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위의 글은 케빈 드영, 『성경, 왜 믿어야 하는가?』(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