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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편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 가득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의 저자 손현보 목사님은 “5%의 꿈은 이루기 어려워도 30%의 꿈은 이루기 쉽다.”고 단언합니다. 5%를 꿈꾸는 자는 항상 쩨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어진 환경에 대충 이루려고 합니다.

 

하지만 30% 성장은 그런 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생각의 혁신이 일어납니다.

 

기업에서도 5%성장을 목표로 세울 때는 전기 사용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이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러나 30%성장을 목표로 세우면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혁신적인 사고의 혁명이 일어나고 방법부터 달리할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셨던 방법을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주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개인적,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추구하십니다. 그 일에 초청하시고 성령님으로 성경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환경과 공동체를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이 때 우리는 그 말씀이 내 뜻과는 달라도 말씀에 맞추어 조정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예수님도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더 큰일을 보이사...”(요5:19-20 참조)

 

우리도 이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은 내려놓고 예수님이 일하셨던 방법을 배우고 익힙시다.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시는지 보고, 말씀을 듣고 동참합시다. 이 일에 영적인 집중력과 민감성을 키웁시다.

사랑으로 품되 공의의 손이 겹쳐야

 

“주님의 사랑은 공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분의 사랑은 곧 공의를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사랑 없는 정의란 무자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고 정의가 상실된 사랑이란 무책임한 방치에 불과하기에, 주님께서는 정의를 가능케 하는 힘인 사랑의 손을, 사랑하게 하는 능력인 공의의 손을 동시에 갖고 계신다. 그분에겐 정의의 다른 모습이 사랑이요, 사랑의 다른 이름이 공의인 것이다.” -이재철 목사의‘다메섹으로’에서-

 

주님의 공의와 사랑의 손안에서 만이 우리의 옛 사람은 꺾어지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손안에서 우리가 걷고 있는 다메섹 도상의 의미와 가치가 새로워집니다.

 

세상의 불의를 향해 정의의 손을 내밀되 반드시 사랑의 손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때에만 우리의 정의가 산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손으로 이웃을 품되 그 손은 언제나 진리인 공의의 손과 겹쳐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미명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사랑이 상대를 타락시키는 마약이 아니라 참 생명의 묘약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CTS

존재하는 것들은 사명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중략). 연필의 사명은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지우개의 사명은 잘 지우는 것입니다. 의자의 사명은 앉기 위한 것입니다. 연탄의 사명은 뜨겁게 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정균승 저《왜라는 질문을 하고 어떻게라는 방법을 찾아 나서다》(북채널, 209쪽)


그늘도 이끼를 길러내고 무생물조차 존재할 이유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사명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돌을 다룰 때 어설픈 아마추어는 망치부터 듭니다. 그러나 고수 석공은 돌의 결을 먼저 봅니다. 결대로 치면 돌이 나갑니다.


만물은 결이 있습니다. 바람에도 바람결이 있고, 물에도 물결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숨에도 결이 있어 숨결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그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결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결대로 살아갈 때, 열등감이 없고,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힘이 넘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요? 라는 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잘못 생각하는 것

    세상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이기심

    세상에서 가장 나쁜 패배는 용기를 잃는 것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

    세상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잘못은 짜증을 내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이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곳은 내적인 평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낙관주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만족은 책임 완수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믿음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부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 자신이 경험하는 일이 무엇이든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이 고맙게 여기는 것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뛰어 넘을 힘이 없습니다. 미래를 넘어설 힘 또한 없습니다.“나는 언젠가 행복해질 꺼야”혹은“내가 어떻게 되면, 무엇이 있다면 행복할 텐데”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믿음이 있어야 하고, 오늘의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지금 감사하고,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생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오늘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도를 생각하며..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이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를 다시 묵상하면서 “조선”이라는 단어에“알바니의 한국인”들의 영혼들이 오우버렙 되는 것은 왜 일까요?

1885년 27세의 나이로 복음을 들고 조선에 왔던 한 선교사의 심정이 지금 저희의 심정입니다. 어떻게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형편이 조선시대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 하나님! 135년전 선교사에게 주셨던‘하나님의 나라’비전을 우리도 품게 하셔서 그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성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닙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는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나 두려움이나 의무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해주신 일에 감사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성숙은 결코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숙은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섬기고’‘주기’위하여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섬기고’‘주기’위해 오셨다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도 이 두 단어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섬김’과 ‘줌’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섬기지 못한 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이것을 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표현이 없는 감동은 좌절을 낳으며 섬김과 나눔이 없는 지식은 영적 침체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섬기는 것’보다 ‘섬김 받는 것’을 원합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줄까?”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에서 어떻게 내 필요를 채우고 무엇을 얻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것이 죄성을 가진 인생들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가면서 우리 삶의 초점은 점점 더 섬김의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으로사는교회 성도들은 “누가 내 필요를 채워줄까?”라는 질문을 그치고 “내가 누구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까?”라고 날마다, 특별히 기도할 때마다 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룸에 대한 성경적 대책


시간이 참 빠릅니다. 

벌써 2020년 한 달이 지나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해에 결단해야 할 일이 미루어 진 것은 없습니까? 

작년에 했어야 후회하지 않을 일은 없습니까? 미룸에 대하여 성경은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1.변명을 그치라./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 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22:13) 

사람들은 ‘상황이 안정되면 하겠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쉽게 안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미루기보다는 중요한 것 순서대로 선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2.오늘 시작하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어느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삶, 가족이나 친구, 직업 이 세 영역에서 하나님이 오늘 내가 하기를 원하신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한 가지씩 적어보십시오. 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오늘 시작하기로 결정합시다. 목표한 것을 하루에 30분이라도 실천합시다.


3.일정을 계획하라./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잠13:16)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하면 실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달력에 표시하거나 메모하고, 특정 시간을 잡아보세요.


4.두려움에 맞서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인간에게 두려움은 약함의 표시라기보다 인간됨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음에도 전진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5.고통 너머에 있는 열매를 생각하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이 땅에서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열매를 추수합니다.(시126:6)

나는 왜 미루는가?


자신은 오늘 해야 할 일이지만 미루진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서는 안 되지만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우리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것들을 자꾸 미룹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비결은 오늘 깨닫는 말씀부터 먼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미루게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완벽주의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전11:4 표준새) 모든 상황이 완벽하도록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시간, 돈, 건강, 환경은 모든 것이 완벽해질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2.우유부단함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약1:8 표준새) 우유부단함은 신앙 훈련에 참가하거나, 끊어야 할 것을 결단하거나, 진로를 선택하거나, 직장을 옮기는 등의 결정을 미루게 합니다.


3.두려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 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22:13) 전도대상자를 만나는 일, 인생문제를 상담하는 일, 소그룹에 참여하는 일, 신앙생활에 대해 나누는 일 등등 당신은 자신에게 유익을 알면서 미룬 적은 없습니까?


4.게으름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잠26:14)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잠26:16)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15:19)

 

 5.저항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18:9) 일을 미루는 것은 수동적인 저항입니다. 가령 ‘청소하라’고 하면 하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시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미움, 분노 등의 저항은 일을 미루는 원인이 됩니다.


일을 미루게 될 때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 즉 헌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끝>

피할 길


제이콥이라는 농부에게 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 노새가 깊이 15m나 되는 버려진 우물에 빠졌습니다. 

노새는 우물이 좁아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제이콥은 노새를 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노새를 흙으로 덮어주기로 했습니다.


제이콥은 친구를 불러 함께 우물에 흙을 퍼 넣었습니다. 첫 삽의 흙이 우물 바닥의 노새 위에 떨어지자 기절했던 노새가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흙이 떨어지자 노새는 묻히지 않고 흙을 떨쳐냈습니다. 

흙이 몸을 칠 때마다 노새는 몸을 흔들어 그 흙을 밟고 일어섰습니다. 노새는 몸에 흙을 떨치고, 흙을 밟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시간이 흘렀을 때 제이콥과 친구들은 우물위로 나타난 노새의 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노새를 묻으려 했지만 노새는 오히려 그 흙을 밟고 올라온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인생의 시험거리, 전진을 방해하는 장애물 같은 흙덩이가 우리의 몸을 칠 때마다, 

우리는 그냥 묻혀서는 안 됩니다. 

그 흙을 떨쳐낸 다음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자’가 아니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지혜로운 노새의 이야기처럼 우리를 묻기 위한 흙은 오히려 회복의 디딤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원망하면서 삶의 열정을 잃는다면, 고난으로 인해 묻히는 꼴입니다. 

시험당할 때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능히 그것을 이긴다면 낙심하기 쉬운 상황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유익한 도구가 되었음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31)

축복은 고난이라는 포장으로..


어떤 언론의 기자가 하늘나라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복을 담당하는 천사와 고난을 담당하는 천사를 만나려고 하는데, 두 천사가 사는 곳이 같았습니다. 그 집에 찾아갔더니 한 천사가 구름의자에 앉아서 커다란 구멍 속으로 뭔가를 열심히 던지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그 천사에게 뭘 하는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천사는 복 받을 사람에게 공을 던지고 있는데, 사람에게 공이 맞으면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공 하나를 받아들고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에는 고통, 역경, 두려움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자가 천사에게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난이잖아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공을 하나 들더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껍질이 벗겨지자 황금색 찬란한 빛과 함께 ‘복’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축복은 고난이라는 포장에 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이나 역경은 사람을 성숙시키고 복을 받을 만 한 그릇으로 만들어줍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이 어떻게 왔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 가운데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표시입니다.(롬8:17 참조)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