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말씀과 양육 > 사랑편지

사랑편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 가득한 말씀을 전합니다.


내 입의 말이 나를 만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들이 발을 헛디뎌 30m쯤 아래 가시덤불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무릎과 팔이 까져 피가 흐르는 것을 본 아들은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도와주세요!”그러자 어디선가 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도와주세요!”


놀라서 어리둥절해진 아들이 물었습니다.“누구세요?”그러자“누구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대꾸만 하는 말에 아들은 처음에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워요” “무서워요”, “너는 겁쟁이야” “너는 겁쟁이야”, “너는 바보야” “너는 바보야”


그 때 아버지가 내려와 아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에요?”그러자 아버지는 웃으시며 설명했습니다.

얘야 그것은 메아리란다. 메아리의 또 다른 이름은 인생이지”그러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너는 승리자야!” 그러자 응답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승리자야!”  아버지의 목청이 다시 울렸습니다. “너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너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아들아 인생이 이렇단다. 사람은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12:34)하고,  그 사람의 말은 열매를 맺어 그 사람을 복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단다.” (잠 13:2-3,18:20-21참조)


말하는 습관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의 말에는 창조력이 있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성취하기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그것을 매일 아침 말로 선포해 보십시오. 

말의 습관을 긍정적으로 고쳐 보십시오. 그러면 성숙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잘 아신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를 너무 잘 아신다고 노래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충족하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불안해지거나 부끄러워 집니까? 아니면 편안하고 안심이 됩니까? 하나님을 속이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후자일 것입니다.


릭워렌 목사님은 다음 다섯 가지 영역으로 이 부분을 교훈한 적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나의 잘못과 실패를 아시지만 여전히 무조건 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 

2. 하나님은 나의 감정과 낙심을 아시며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아는 나 자신 보다도 나의 아픔을 잘 아신다. 

3.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아심으로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게 하시고, 준비케 하신다. 

4. 하나님은 나의 두려움을 아시며 나의 근심을 맡기길 원하신다.

5. 하나님은 내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을 보시므로 나의 충성됨을 아신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동기부여가 됩니다. 또한 나의 상한 감정으로 분노하거나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 면전의식’으로 산 것이 그 것입니다. 우리 삶의 어떠한 부분도 숨겨진 것이 없고, 우리가 당하는 그 어떤 일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 밖의 일이 아님을 확신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미래의 어떤 일도, 내가 두려워하는 그 무엇도 우리의 믿음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그 무엇도 헛되지 않음을 깨달으며 열매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24)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텍사스 주의 보몬트라는 마을 근처에 사는 한 지주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땅의 일부를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할 형편에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한 정유회사가 그가 소유하고 있는 땅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 같으니 땅을 파도록 허락한다면 로열티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땅 주인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꺼이 이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유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정유회사는 유전개발을 끝내기도 전에 수십만 배럴의 석유를 퍼 올렸습니다. 이것은 단일 유전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한 유전이 되었습니다.


지그 지글러(zig ziglar,‘정상에서 만납시다’,‘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의 저자)는 이 유전 발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한 바 있습니다. 

“땅 주인은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되었겠죠? 정말 그럴까요?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아니다’입니다.  땅 주인은 그 땅을 소유했을 때부터 이미 억만장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불행은 그가 그 사실을 모르고 그 땅을 이용할 줄 몰랐다는 것이죠” 만일 억만장자가 된 땅 주인이 이 어마어마한 유전이 자기 소유란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 있습니다(골2:3)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즉 가정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정신적 문제, 장래문제, 내세문제를 이미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만 안목의 정욕(요일2:16)으로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이미 복음의 능력이(눅4:18-19) 우리 안에 있지만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이 눈은믿음의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다 진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지친 삶을 살아가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아닙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진주 같이 귀한 사람


바다 속에 조개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개는 이웃을 만나 하소연 했습니다.  “내 몸속에 돌이 생긴 것 같아. 무겁고 둥글게 생겼는데 아주 귀찮고 불편해” 그러자 이웃에 사는 조개는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주 건강해. 내 몸속에는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지 그러므로 나는 정말 건강해”  “좋겠다. 난 정말 이 둥글고 무거운 것 때문에 살 수가 없어...”


그 때 옆에 사는 게 한 마리가 이 이야기를 듣고 건강을 자랑하는 조개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건강하지?... 물론 그럴 거야.  하지만 네 이웃이 참아내고 있는 그 고통스러운 것은 정말 진귀하고 값진 진주란다.”


그렇습니다. 아름답고, 값진 진주를 간직하려면 그 만큼의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 친구, 이웃 등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비록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고통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함께 해야 할 진주같이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고통 때문에, 이 사람들 때문에 더욱 강하여지고, 훈련되어 성숙한 사랑과 거룩, 그리고 평강을 배웁니다. 정말 고난은 진주 같은 보물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은 자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1,14)

 *히브리서의 징계는 고난의 훈련을 의미합니다.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에


어떤 사람이 오른쪽과 왼쪽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 항아리로 물을 날랐습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것이었습니다. 우물에서 양쪽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에는 물이 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습니다.“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세요”


그때 주인이 말했습니다.“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안단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로 여깁니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하다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당신은 금이 안간 아내입니까? 그래서 남편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금이 안간 남편입니까? 그래서 아내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명문대를 나온 어떤 학생이 있습니다. 부모의 완벽함 때문에 그 자식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심지어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해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그 아이의 심성이 아스팔트 바닥같이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좀 금이 가면 어떻습니까?  

틈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좀 부족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사람이 일부러 금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생은 이미 부족합니다. 

문제는 스스로 완벽한 걸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리새인처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사단은 고립된 자를 좋아한다.

  

오 직   오늘 이라   일 컫는   동 안 에    매 일    피 차   권 면 하여   너 희  중 에    누구 든지     죄 의    유 혹 으 로     완 고 하게    되 지    않도록   하라   .”(3:13)

    

하 나 님 은     성부 성 자 성 령     삼위 일체   하나님 으로즉    공동체 적으로   존재  하시는  분입니다  .  그래서   우리를   태어 나면서부터   가정이라는   공동체   속으로   보내셨고   신앙 생활도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

   

교회   가족은   우리가   타락  하 지   않도록   도와  줍니다  .  “남 의    일 에   신경   쓰 지 마  !”  라 는    말은   크 리 스 천 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유 혹 에   대하여   면 역 성을   갖고    있는   사 람은    아무도   없 습 니 다 상 황만   제 대 로   주 어  지 면    누구든지   우리는   어 떤   죄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

   

우 리 가   공 동 체 에   가 족 으 로   속해   있다는    말은    우리는   서로의    삶에    영 향 력 을    미치도록   부 름  받 았 다 는   의미입니다 .  주 위 에    누군가가    신 앙 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알 고   있다면   그를    좇아가서   공동체    안으로    데리고   들 어  오며 피  차  권  면 하 는   것 이   우리의    책임 입니다 .

   

야고보  선생은 하 나 님 의   진 리 에 서    떠 난   사 람 을    알거든   포 기 하 지     말고 그 를     찾아  가고 그 들 을    돌 아 서 게    하라  고   권 면 합니다  .(약 5 :19-20 )

  

하 나 님 은   하 나 님 의   양  무 리를   지키고    보 호 하고   양 육 하 고    영 적  복 지 에   신경   쓸   책 임을   교 회  지도 자 들 과    서 로 에 게   주셨습니 다  .( 히 13:17)

  

사 탄은   생 명이  있는   몸에서   떨 어져   있고하 나님의   공동 체에서   분리   되 어 있으며  영적   리더가   책 임  지지   않는   고립 된   신자 를     좋아합니다  .  그 들 은 사탄의    전술에 대 해     무방비   상 태  이 며 무 기 력  하 다 는  것을    잘    알 기    때 문입니다  

    

출  애  굽  한   길에서     이스라엘 을    공 격 한    아 말 렉 의   전  략은뒤 에   떨 어진   약 한  자 ”(신 25 :18 )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뒤 쳐져 홀로 고립되어, 기도의 후원과 대화가 단절 되어 있는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 입니다.


"한   사 람 이면    패   하겠거니와     두   사 람이면     능 히    당 하 나 니    삼 겹줄 은     쉽 게    끊 어 지지    아 니 하느니라  ”(4:12 )


믿음의 가치

  

추운 겨울   런던거리,   남루한  옷차림의   한  중년의  남성이  초췌한   모습으로   낡은   바이올린을  겨드랑이에   끼고   악기점을   찾아 왔습니다 .    그는  머뭇거리다,       “  저는   배가  고픈 사람입니다 .    이   바이올린을   팔고   싶습니다   .         얼마라도   좋으니  사  주시기만    하면    감사하겠습니다 ”    하며  가지고   온    바이올린을  내밀었습니다  .

   

가게   주 인은    별   생각 없이      $   5  을    건네 주고  ,      바이올린을 건네받았습니다   .      악기점    주인    벤츠씨는   그가       문을 나간    후    바이올린을     켜 보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     아름다운   특유의    음색  ,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음량에     놀라    먼지 투성이의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   보고   그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거기에    '  A n t o n i o  S t r a d i v a r i .   1  7 0 4 '   (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  7  0  4 년  제작 )   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    바이올린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기였으며  ,       행 방 불명되어     2 0 0  년에        걸쳐       많은   사람이   찾던     바로   그     악기였습니다  .       그     바이올린의     당시    시세는    1  0  만 불이     넘는  것이었습니다  .    2 0  0    6  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한    대가     3  5  4  만   달러에    거래된 적도   있습니다  .

  

나의      믿음의    가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고      있거나      싸구려로    알고   싸구려     취급    한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

  

베드로   사도는      불로    연단하여도       마침내는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연단    받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     (벧전 1  :  7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 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   ( 마   1  7    :   20  )   하셨습니다  .

   

믿음의      가치는     이 땅의     무엇으로도      비길     수     없고 ,        내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         믿음은      나의     영원한    생명을     지켜    줄    뿐 아니라  ,       손으로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수    있는    실체이며 ,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   ( 히 11  :  1  )            그러므로     믿음의      가치를      알고 ,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썩히지      말고        기도와     삶에       적극  활용하셔야 합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 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   ( 막    9  :   2 3   )


나부터...

   

어느 목장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   어느 날   말 한 마리가  나무 울타리를 걷어차다가  한쪽  다리를 심하게 긁혔습니다 .   주인은  말을  마구간으로 데려가 상처에  소독을  해주고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말은 여전히 끙끙대며  앓고 있었습니다 .

   

주인은 안 되겠다 싶어 수의사를 불렀습니다 .   수의사는 말의 상태를 살펴보고 항생제를 투여했습니다 .   그러자 며칠은 좋아지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의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   이번에도 수의사는 항생제를 투여했습니다 .   약기운이  있을 동안은 원기를 회복해  뛰어  다니는  듯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

 

주인은 마침내 상처가 낫지 않는 원인을 알아내야겠다 싶어서   말을  차에  싣고  큰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   말을  마취시키고 자세히 검사하기 시작했습니다 .   검사결과 ,   원인은 몇 달 전 울타리에 부딪힌 부위에서 피부를  파고든 큼직한 나무 조각 때문이었습니다 .

 

수의사는 여태껏 고통의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겉으로 보이는 증상에만 신경 쓰고 항생제만 투여했던 것입니다 .

 

우리도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   실제적인 문제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다른 사람 ,   사회구조 등에서 찾으려고  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   부부 간에 ,   부모와 자녀 간에 ,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  “ 내 탓 이  아니라  “ 네 탓 ” 으로 돌릴 때가 많습니다 .   

가정에 ,  교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 나부터 ” 입니다 .

 

다음은 영국 웨스터민스터  교회의  지하 묘소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   “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나부터의 변화가 아름답습니다 .   우리 가정 ,    교회의 행복은 나부터입니다 .


약속한 것 이상을 지키는 성도


언제까지 무엇을 하기로 약속하고나중에 그것을 후회해 본 적이 있습니까그렇게 힘들 것 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일을 스스로 쉬 그만둔 적이 있습니까겉으로 멋있게 보였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던 일에 동의해 본 적이 있습니까초대를 수락한 뒤 그러지 말걸 그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교회에서 세례를 받습니다세례는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교회 공동체의 룰에 따르겠다는 공적인 약속입니다혹시 세례교인 가운데 그때 서약을 너무 쉽게 했다고 후회하는 분은 없으시겠지요내가 세례를 받을 때의 감격과 약속을 기억하십니까늘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도 임명 받을 때에 그 직분을 수락했다는 것은(내가 자원한 봉사의 일일지라도)“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을 따라 서약식이 있었든없었든 충성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20:25)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15:4b, 5:4-6 참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깨닫는 것은 돈은 빌리기는 쉬워도 갚기는 어렵습니다관계나 제휴 등을 맺기는 쉬우나 끝내기는 어렵습니다또 스케줄을 채우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합니다.“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입니다.(5:4-6) 약속은 신중하게 해야 하고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약속은 적게 하고 약속한 것 이상을 지키는 성도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란 평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 지불


Lancaster에 있는 Millennium 극장에서 성극요셉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극의 첫 장면은 요셉의으로 시작하였는데형들의 곡식 단이 일어서서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나해 달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을 역동적으로 표현해 준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셉을 형들은꿈쟁이”(Here comes that dreamer!)라 불렀습니다요셉의 일생은 꿈이 이끌어 갔던 삶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꿈(비전)을 주셨다면 그 이후에는 순풍에 돛단배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오히려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고통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이빗 A.씨맨즈는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꿈들을 세상이 얼마나 미워하는지 요셉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실례가 또 있겠는가사단과 악의 모든 세력들은 언제나 우리를 우리의 거룩한 영광과 함께 구덩이 속에 던져 넣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던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져 죽음의 위기를 맞습니다다행히 목숨은 건져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고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억울한 누명감옥살이..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은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 지불이었고그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구덩이에서부터 왕의 감옥까지의 고난이 없었다면 요셉이 어떻게 바로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아버지와 형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하고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 지불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 데도 고난가운데 있습니까그 고난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고 대가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